그러고 얼마 있다가 신숙희가 미술 도구를 가져왔다. 신숙희는 회관 초창기에 엘리베이터 걸로 취직을 하였다. 수원에서 야학을 담당하던 친구로부터 가정이 어려우니 회관 내에 취직을 부탁한다고 하여 내가 관리부 간부에게 부탁하여 취업이 이루어진 일이 있었다. 숙희는 혜성이 보고 틈만 나면 오빠라고 하면서 애교를 떨면서 회관의 돌아가는 각종 소문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숙희는 처음에는 엘리베이터 걸로 일했다가 승진이 되어서 필순 사무실 보조원으로 일했다.

숙희가 가져온 보따리를 풀어보니 붓, 물감, 책자, 팔레트, 등이 들어 있었다. 숙희는 ‘언니가 떠나면서 이 물건을 전해주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받고 보니 각종 미술 도구가 있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까지 이별의 선물을 줄 줄이야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잊으려고 하던 지난날이 다시 생각이 났다. 이 귀한 선물을 받으니 정신이 몽롱하였다. 나는 미술학도가 아니지만 이 귀한 도구를 기념으로 보관하기로 하였다. 서로 좋아한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이것을 전해 주니 이 선물은 어떤 의미일까? 혹시 까마득한 날에 부탁한 손수건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대신 자기 손 때 뭇은 모든 도구를 전해준 것은 아닐까? 더구나 이들 선물을 예쁘게 포장한 다음에 ‘앞으로 영원히 잊지 않겠다.’ 라는 말을 하면서 전해 주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떠난 사람이 내가 어려운 사람을 취직시켜 준 숙희를 통해주니 인연은 이런 건가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흔들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름다운 삼각형이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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